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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ook

마이클 코넬리, 배심원단ㅣ링컨타운카와 LA의 햄버거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1. 2. 17.
배심원단

배심원단

마이클 코넬리 저/한정아

 

 

 

 

 

 

 

★ 왜 읽었나?

마이클 코넬리는 늘 즐겁게 읽는 작가이지만, 이번에는 스릴러를 즐기는 것보다 여행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의 책은 엄청나게 디테일이 강해서, 범죄를 테마로 LA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가볍고 특이한 여행기로 시작해서, 점차 정통 법정 스릴러로 빠져들었다.

뭐라뭐라 해도, 역시 스릴러를 읽는 목적은 휴식이겠지.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매뉴 매커니히

 

★ 왜 링컨차일까?

그 많은 자동차들 중에서 왜 링컨차일까?

정통 세단의 기능적인 면을 제외하고, '링컨'이란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링컨은 미국의 가장 유명한 대통령 중의 하나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변호사였다. 

그래서 거리의 변호사가 타고 다니기에 완벽한 네이밍이었던 것 같다.

 

1편에서 변호사가 사무실 없이 링컨차를 타고 다니며 일을 한다는 설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트렁크에 서류를 담은 상자들이 가득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운전사와 함께 도시를 다닌다.

와이파이가 필요할 때엔 스타벅스 주변에 잠시 정차해서 해결한다.

 

더구나 이 소설에선 링컨차들이 떼로 법정 앞에 서있다.

미키 할러가 유명해지면서, LA의 다른 변호사들이 링컨차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아무런 의식없이 행동하다 다른 차에 타는 일도 벌어진다.

 

소설의 마지막, 승소한 미키 할러는 새 링컨차를 2대 산다.

링컨 타운카 2011년형. 주행거리가 짧은 중고차.

소설 중간에 링컨차가 교통사고가 나서 완파되기 때문에, 새 자동차가 필요했다.

이 2011년이란 숫자가 중요한데, 이 유서깊은 자동차 시리즈가 마지막으로 나온 해이기 때문이다. 

링컨 타운카는 2011년에 단종되었다가, 2016년에 다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1편 영화에 나온 올드카가 훨씬 링컨차 답다.

현재 개량된 차량은 그 분위기가 웬지 다른 차와 비슷해져 버린 느낌이다.

 

링컨을 타본 적은 없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한번쯤 타고 싶어졌다.

 

★ 악당으로서의 형사

스릴러에겐 반전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 기대를 못미쳤다.

마이클 코넬리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는 반전에 관심이 없다.

늘 정공법을 보여준다.

반전보다는 과정의 충실함,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약간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앞에 깔아놓은 미끼를 수거하지 않았다.

 

악당 마르코와 랭크포드는 계속 말한다.

 

미키 할러. 넌 아무 것도 몰라!

전체 그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가 우리 뒤에 있는지!

 

그래서 이들 뒤에 있는 누군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더 큰 그림이나 뒤에 있는 누구가 없다.

 

후보자는 있었다. 

미키 할러가 연애에 빠지는 여자, 캠벨.

이 여자가 뭔가 플롯에 영향을 줄 것처럼 계속 등장하는데, 결국은 그냥 연애상대였다.

트릭으로만 사용된 느낌이다.

 

이것은 정공법일까, 아니면 플롯의 실패일까?

 

★ LA 변호사의 음식

엄청나게 다양한 햄버거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동료였던 노인과 먹는 햄버거 장면은 따뜻했다.

또한 요기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아주 구체적인 식당 이름들을 댄다.

아마 LA에 사는 사람들은 책을 덮고 바로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식당들마다 잘하는 메뉴들을 공들여 소개한다.

수제 햄버거의 풍성한 맛을 생각하면, 소설에 나오는 햄버거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여행을 해도 좋을 것이다.

 

또, 변호사 사무실의 회의가 있을 때면, 늘 준비되는 커피와 도넛도 있다.

특정 가게의 도넛을 먹는 것 같다. 

도넛먹는 형사들은 꽤 영화에 자주 나온다.

 

데이트할 때 초밥을 먹는다.

미키 할러는 평소에도 초밥을 좋아하고, 사케를 곁들여 자주 먹는다.

사케를 굉장히 좋아해서, 뜨겁게도 마시고 차갑게도 마신다.

 

이제 일본식 횟집은 미국 중산층의 애호품이 되었다.

80년대만 해도 초밥은 낚시 미끼를 먹느냐며 놀림감이었다.

하지만 일본식 식당은 착실하게 미국을 공략했고, 엘리트들이 먼저 반응한다.

이젠 중산층들이 즐기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비싼 돈을 내고, 주방장 앞 구석자리도 예약을 해야 겨우 얻는 고급레스토랑이다.

 

★ 머리쓰는 주인공

미키 할러는 좀 심할 정도로 무력이 없는 주인공이다.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시리즈, 보슈는 할러의 이복형인데, 그는 무력만점의 사내로 나온다.

하지만 동생 할러는 매번 육체적인 충돌에서 약자이다.

그는 나이들어 은퇴한 형사에게도 위협당하고, 미국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모두 한번쯤 활약하는 카레이싱도 운전사에게 맡기는 캐릭터이다. 총을 사용하지도 않고, 특수능력도 없다. 그저 열심히 머리를 쓴다.

 

미키 할러의 무기는 법이다.

세상을 망치는 강력한 악당들에 맞서는 무기는 법이다.

 

미키 할러의 링컨차 변호사 시리즈는 총 5권인데, 나는 1권과 5권만 읽었다.

중간 3권은 읽지않았다.

그런데 1권과 5권에 나오는 미키 할러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1권은 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잔기술을 부리는 놈이었다면,

5권은 그냥 존 그리샴의 점잖은 중산층 변호사였다.

중간 3권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짐작할 뿐이다.

특정 주인공의 시리즈에서는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캐릭터는 현실의 사람처럼 변화한다.

 

★ 시카리오

소설에는 멕시코 마약갱단의 간부와 미국 마약단속반의 형사가 나온다.

갱단 간부는 열네살 때부터 사람을 죽여온 무시무시한 범죄자이고, 

형사는 법망을 조롱하며 타락한 악당이다.

 

이런 캐릭터는 미국 영화에 널려있다.

이런 캐릭터를 볼 때마다 도대체 중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궁금하다.

반복되어 출현하는 이들 캐릭터들이 알려주는 사실을 적어본다.

 

미국은 중미와 경제적으로 얽혀있다. 

마약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퍼져있다.

마약생산지 국가들은 마약경제에서 얻는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미국은 마약과 준전시 상태의 싸움을 하고 있고, 현장의 피로가 크다.

 

★ 제목이 아쉽다.

The Gods of guilt란 말은 소설에서 여러번 나온다.

소설 속에선 '단죄의 신들' 이라고 번역한다.

그래놓고 제목은 '배심원단'이다.

왜 '단죄의 신들' 은 한국어판 제목에서 탈락했을까?

 

'배심원단'이란 제목은 엉뚱한 곳을 가리킨다.

제목 때문에 소설 속에 나오는 영화사 시나리오 담당관 여자를 주목했다.

이 배심원이 뭔가 큰 역할을 하는걸까 기대하며 봤지만, 이것도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내 생각에 이 배심원 캐릭터는 마이클 코넬리가 취재 중에 알게된 어떤 사람에게 헌사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책 뒤에 붙은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영화사 사람들로부터 얻었다고 말한다.

1편을 만들었던 영화사 관계자들과 대화에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인연을 특별하게 남기는 트릭이 아니었던가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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