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서효인 저
★ 뒷표지
여수는 처가가 있는 도시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밤의 바다보다는 낮의 굴뚝이 더 인상적인 도시였다.
화학 공장의 성기들은 반성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회백색 매연이 쉬지 않고 도시의 하늘을 덮어 가렸다.
나는 반성을 모르는 굴뚝이었다. 솟구치다 사라질 연기를 위해 반성을 모르고 살았다.
나는 남성 시인이고 이성애자며 판정받은 장애가 없다.
돈 안 되는 시를 쓴다며 이른바 예술 한답시고 인중에 힘깨나 주고 지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사회적 오른손잡이로서 불편함과 마주해 악숙하지 않았다.
내가 겪지 못한 불편은 누군가에게 불쾌와 상처, 고통과 폭력이었다.
문단이라는 거실 소파에 앉아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문학은 반성을 토대로 지속될 것이다.
수년간 발표한 시를 모으니 그때는 몰랐던 여성혐오가 지금은 보여 빼거나 고친 시가 몇 있다.
온갖 곳에 엄결성과 예민함을 드러내면서 하필 방종했던 부분이다.
여수의 굴뚝을 얼마간 지나치면 장인의 묘가 나타난다. 꽤 높은 둔덕이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공장들 너머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두 번 절을 하는 동안 딸아이가 묘와 묘 사이를 뛰어다닌다.
삶과 죽음의 간격에서, 반성과 망각의 틈에서 감히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는다.
문학의 이름을 빌려 자행되는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 시인의 말
끝이라 생각한 거리에서
2017년 2월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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