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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ook

김승중,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ㅣ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과 권투선수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0. 12. 7.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은 여러 군데에서 읽었다.

하지만 토론토대의 김승중 교수의 번역을 읽고서야 그 가치가 가슴에 와닿았다.

다른 번역들은 문장들이 뻣뻣하고 꼬여있어서 느낌이 덜했다.

아마 그 쪽이 더 정직한 번역일지도 모른다.

 

김승중 교수의 번역문은 월간중앙에서 처음 봤다. 

월간중앙에서 처음 읽을 때는 인용문이 꽤 길어서, 원고료를 거저 먹는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김승중 교수는 다른 번역에 기대지않고, 스스로 발췌하고 통합하여 다시 번역했다.

그의 번역은 페리클레스가 한 말 그대로는 아니지만, 의미는 확실하게 전달된다.

한국어로 페리클레스의 생각이 잘 전해진다.

 

김승중 교수의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은 책 자체가 이런 발췌통합 번역과 같다.

그리스 문명의 널리 알려진 가치들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다시 이해하고 소개한다.

그리스 문명에 대한 서양의 명저들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입장이 빠져있다.김승중 교수의 책은 그래서 매우 유익하다. 책을 읽으며, 그가 공부한 그리스 문명 정보들도 대단했지만, 그가 언뜻언뜻 보여주는 감성이 보통의 한국사람과 닿아있어 놀랐고 좋았다. 문장도 단정하되 구어를 항상 끌어안고 있어 편안하다. 이 분이 더 많은 책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책에는 좋은 정보가 많지만, 여기엔 두가지만 기록한다.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 번역문.그리고 권투선수 동상이다.

 

영국박물관의 페리클레스 흉상, 그는 항상 투구를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가 얼굴이 기형적일 정도로 길어서, 그대로 흉상을 만들면 보기 흉할까봐 흉상제작자들이 투구를 씌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일소에 붙이고, 프로 정치인으로서 장군이미지를 노린 결과란 이야기가 더 학문적인 해석이다. 하여튼 고대 그리스인의 흉상을 만났을 때, 투구를 쓰고있으면 페리클레스이다.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 

기원전 431년, 아테네

김승중 발췌통합 번역

 

여기 전몰자의 미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나 같은 한 사람이 연설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는 없다. 그들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보다는 우리의 전사들이 죽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우리의 선조들의 정신자세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준 정체(政體)와 생활방식을 언급해야만 하겠다.

 

우리의 정체는 이웃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왔다. 우리 정체가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은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 때문이다. 시민들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그러나 주요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되며, 추첨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다. 가난 때문에 능력자가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도시 전체가 헬라스의 학교다. 우리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희하듯 우아하게 자신만의 특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테네 이 도시의 힘이다!

사생활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참을성이 많지만, 공무에서는 법을 지킨다. 그것은 법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일이 끝나면 힘들게 시달린 우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온갖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일년 내내 사시사철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운동경기와 축제, 아름답고 운치 있는 건축물,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환경은 평상시의 근심과 전쟁의 슬픔을 쫓아낸다. 우리 아테네 도시국가의 위대함 때문에 온 세상에서 온갖 상품이 모여들어, 우리에게는 외국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자국물건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내가 여기서 아테네의 위대함을 논하는 것은 전몰자의 위대함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군사정책에서도 우리 도시는 온 세계에 개방되어 있으며, 적에게 유리할 수 있는 군사기밀을 사람들이 훔쳐보거나 알아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을 추방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밀병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용기와 기백을 더 믿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시인의 찬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도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여기 전몰자와 이들과 같은 분의 용기와 무공이다. 이 분들의 인간적 가치가 아테네를 빛낸 것이다. 이들의 불굴의 용기는 장광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히려 여러분이 날마다 우리 도시의 힘을 실제로 응시하고 우리의 아테네라는 도시국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가 영광의 황홀경 속에서 위대하게 보이면, 이 장엄한 도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모험심이 강하고,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고, 의무를 다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 사람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공익을 위하여 자신의 귀중한 목숨을 최상의 아름다운 제물로 이 도시국가에 스스로 바친 그들을 기억하라! 여러분은 이들을 본받아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심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망설이지 말라! 이분들의 자녀는 어른이 될 때까지 국비로 부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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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멋내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어로 된 이 연설의 첫머리를 옮겨본다.

Οἱ μὲν πολλοὶ τῶν ἐνθάδε ἤδη εἰρηκότων ἐπαινοῦσι τὸν προσθέντα τῷ νόμῳ τὸν λόγον τόνδε, ὡς καλὸν ἐπὶ τοῖς ἐκ τῶν πολέμων θαπτομένοις ἀγορεύεσθαι αὐτόν. 

 

영어는 이렇다.

Most of those who have spoken here before me have commended the lawgiver who added this oration to our other funeral customs. It seemed to them a worthy thing that such an honor should be given at their burial to the dead who have fallen on the field of battle.

 

김승준 교수가 소개한 권투선수 흉상, 너무나 강렬하다

시합 직후인 것일까?

뺨과 코에 상처가 났고, 눈도 맞아서 부어있다.

입술마저 쭈글쭈글.

시합에 져서 파이트머니라도 날린 것인지, 그는 누군가를 돌아보고 실망하고 있다.

그의 표정은 승자의 것이 아니다.

패배를 보여주고 싶지않은 사람이라도 만난 것일까?

기원전 5세기. 이 권투선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간의 이런 모습을 동상으로 남긴 문명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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