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작가는 지루한 그리스 로마 고전의 세계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출판사 서평에 고전 가이드란 단어가 나오는 게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전학 교수, 메리 비어드는 굉장한 달변가이다.
그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물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도 잘하지만,
현대의 연구자들, 많은 경우 그녀의 동료와 선후배들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아마 직접 만나보면 굉장히 따분할 학자들이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매력적이다.
인물의 특징을 잘 캐치하고 어떤 이야기로 소개하는데 재능있다.
메리 비어드는 오랫동안 타임스의 문예부분의 서평 담당위원이었다.
잡지의 편집자로서 서평 집필자를 섭외하는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칭찬만 하는 사람은 제외.
자신이 서평을 쓸 때 원칙.
작가를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면서도 할 수 있는 말만 한다.
★ 1부 3장, 어느 투키디데스를 믿을 것인가?
투키디데스의 문체는 악명높다.
도대체 읽을 수가 없는 괴랄한 문장이라고 한다.
이건 현대인의 평가가 아니라, 이미 로마 시대부터 투키디데스의 문장에 대한 불평, 비난이 있었다고.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메리 비어드는 여기에 탁월한 의견을 덧붙인다.
투키디데스의 괴랄한 문체는 그의 새로운 생각을 담기위해 꼭 필요했던 형식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문체로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투키디데스는 이전 시대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졌다.
전쟁의 원인을 신에게서 찾지않기로 한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일이며, 선배인 호메로스나 헤로도토스가 걸핏하면 신의 의도를 묻는 것을 비웃는다.
당대, 아니 그후로도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전쟁과 인간의 운명은 신의 뜻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투키디데스는 다르게 생각했다.
전쟁은 인간의 일이다라고.
키케로같은 사람은 절대 투키디데스의 문체를 본받지 말라고 했고,
크세노폰의 문장을 가장 높게 쳤다고 한다.
지금까지 투키디데스의 문장을 번역한 문장들을 읽을 때, 이해가 안가는 것이 많았다.
이전에 포스팅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도 투키디데스의 문장이다.
그런데 메리 비어드의 의견을 읽고서야, 그간 번역자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정확성을 기했던 것을 알겠다. 또한 가장 잘 읽혔던 김승중 교수의 번역은 거의 창작에 가깝다.
그건 투키디데스의 문장이 아니다.
아마 고전학을 깊게 공부하면 알 수 있는 영역이고, 재미이고, 지식인 것 같다.
메리 비어드의 지적을 읽고 궁금해저서,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투키디데스를 다시 펼쳤다.
선생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한국어를 자랑하는데, 조금 딱딱하지만 직독은 아닌 듯 싶다.
메리 비어드의 의견을 보면, 투키디데스의 그리스어는 굉장히 이상한 문장이다.
번역할 때, 어떤 것이 정답일까?
매끄러운 한국어를 사용하되, 투키디데스의 언어가 괴랄하고 난해하며 이상한 문장이란 점을 알려주면 좋겠다. 이건 굉장히 큰 통찰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형식, 또는 스타일은 내용과 떨어질 수 없다는.
한편, 천병희 선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문에서, 현재의 투키디데스 연구동향을 짤막하게 언급한다.
20세기 후반부터는 문체와 언어분석에 치중하는 연구동향이 차츰 고개를 들고있다.
예전에 이 문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메리 비어드의 책을 읽고나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접근방법인지 알겠다.
또 천병희 선생은 최신 연구동향에 대해서도 계속 추적하고 학습하셨던 것 같다.
정말 존경스런 학자이다.
한편 메리 비어드는 페르시아 쪽에서 본 전쟁에 대한 연구도 언급한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페르시아 연구자들의 연구를 소개하는데,
페르시아쪽의 기록이 별 게 없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조금 나올 뿐.
전체적인 문헌의 양이 고대 그리스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고.
★ 1부 1장, 유적의 건설자
미케네 문명 유적을 발굴했던 고고학자의 일대기를 소개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 남자는 유적지의 땅을 전부 구입한 뒤, 건축가들을 데려가 유적을 자기식으로 새로 만들었다고.
자신이 상상한 유적을 새로 만들면서, 발굴된 유물들을 척척 배치했다고 한다.
일종의 테마파크를 만드는 느낌?
당시 발굴현장을 방문했던 기자와 지인들의 기록들이 남아있는데, 대놓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고.
재밌는 건 이런 식의 발굴은 효과가 컸고, 지금도 그가 건축한 유적이 가장 인기있다고.
또 당대에는 이런 방식이 유행했었고, 고고학의 처음은 이런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메리 비어드는 선구적인 고고학자들의 이런 우스꽝스런 모습을 그대로 전하지만, 그것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식으로 몰아부치지않는다. 당대로선 최선을 다한 일이며, 후대의 비난은 여러모로 부당한 시선이란 지적을 한다.
★ 기타
사포는 기원전 6세기에 활약한 여성 시인, 철학자이다.
그가 남긴 기록이 워낙 적기 때문에, 어떤 전체적인 실체에 접근하는 건 불가능.
다만 현대의 남성 고전학자들이 그녀를 동성애자, 심지어 창녀들을 교육시키는 포주로 이미지화했던 연구는 일종의 악의적인 해프닝으로 본다.
알렉산더 대왕은 로마의 발명품이다.
로마인들은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사랑했고, 재발견해서 널리 퍼트렸다.
메리 비어드는 어떤 학자의 알렉산더에 대한 평을 인용하는데 읽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알렉산더는 살아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살인하거나, 살인하라고 명령하는데 썼다.
★ 표지
메리 비어드의 도전적인 책읽기와 학문의 지향점을 생각하면 한국어판 표지는 조금 아쉽다.
왜 하필이면 책상에서 자빠져 자는 포즈를 선택했을까?
고전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자세가 자빠져 자는 거라 생각했나?
나름 타당한 생각이지만, 그래도 어딘가 어긋나는 포즈라고 생각한다.
미국 표지들을 보자.
페이퍼백과 하드커버 순이다.
Confronting the Classics
Mary Beard
Confronting the Classics: Traditions, Adventures, and Innovations
Beard,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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