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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오비추어리

숀 코너리, 90세로 사망, 생전에 그가 말한 연기비법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0. 10. 31.

배우 숀 코너리가 사망했다고 그의 가족이 발표했다.

BBC 홈피 좌상단에 그의 부고기사가 실렸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길고, 그만큼 다양한 인생을 연기했지만,

나는 그가 군인과 경찰에 참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20대초반 실제 영국 해군에 입대해, 수병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임스 본드는 슈트를 멋지게 입고 총을 쏘지만, 그의 직업은 결국 영국 군인이다.

또한 <붉은 10월>에서 보여준 그의 함장 연기는 더할 것이 없었다.

위엄과 존재감에서 그가 연기한 함장 근처에 간 사람은 진 해크먼이 유일하다.

붉은 10월에서 망명동기가 낚시라고 말할 때의 섬세함은 다른 배우들은 감당하기 어렵다.

이 스코틀랜드 할아버지는 어린이같은 순수함을 내면에 지니고 있고,

그것이 로맨틱한 분위기로 연결된다. 

캐릭터가 딱딱하게 굳어서 한 방향으로 달려가지 않고, 

진폭을 넓게 하면서 울림을 준다. 그리고 여자들하고 같이 서 있을 때 어울린다.

 

그가 형사를 연기한 영화는 두 편이 기억난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과 시드니 루멧의 <오펜스>

아카데미상을 받은 <언터처블>의 노형사 연기도 좋았지만,

오늘은 <오펜스>가 더 기억난다. 

1972년에 제작한 <오펜스>는 형사의 어두운 폭주를 다룬다.

여학생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담당형사인 숀 코너리는 수사 중에 범인에 대한 분노를 점점 쌓아간다.

그러다 용의자 중 한명을 수사 중에 때려서 죽이고, 본인이 범죄자가 된다.

본 지 오래되어 스토리와 결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숀 코너리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과 동작들이 선명하다.

그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형사를 연기하는데,

이 영화는 범인수사물의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고, 

거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급의 혼란을 직시한다.

제임스 본드 역으로 익숙했던 저 강인한 남자가 오류에 빠져 악전고투한다. 

 

이 영화는 숀 코너리가 더이상 007을 하지않겠다고 선언한 이듬해 촬영한 것이다

스타로서 정점에 있던 숀 코너리는 1971년에 마지막 본드영화를 찍고,

배우의 길을 가고싶다고 007을 은퇴한다.

 

<오펜스>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준 숀 코너리의 연기는 대단했다. 

훨씬 나중에 <언터처블>을 볼 때, 오펜스의 형사가 계속 형사 일을 했다면,

저런 노형사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덕적 분노는 옳지만, 절차를 위반하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딜레마.

그런 어려운 숙제와 곤란한 마음을 겪어봐야 노형사가 되는 것이다.

 

붉은 10월호를 개봉할 때쯤, 기자가 숀 코너리에게 물었다.

좋은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숀 코너리는 이에 대해 어렇게 말했다.

 

얼마전에도 한 배우지망생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소. (웬지 이런 말투를 썼을 거 같다.ㅎㅎ)

나는 이 질문을 꽤 자주 받는 편인데, 내 대답은 항상 똑같소.

명작소설 백권의 리스트를 찾아라. 

학교, 신문에서 말해주는 추천도서 리스트들 중에 마음에 드는 걸로 아무 거나 잡아라.

단 백권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백권의 소설을 한 페이지도 빼먹지말고 다 읽어라.

 

숀 코너리는 1930년생인데, 또래 배우들은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익힌 정극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숀 코너리는 젊어서 가난했고, 대학에 다니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고, 가끔씩 단역을 맡았지만 감독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너무 뻣뻣하잖아?

저 스코틀랜드 사투리 쓰는 녀석은 누가 데리고 온거야?

 

거절당하고 욕먹고 통장에 돈은 없는 상황에서 숀 코너리가 선택한 연기수업은 독서였다.

그는 아마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갔다. 

 

저 인터뷰를 처음 읽었을 땐,

경찰과 군인 역에 딱인 배우가 연기비법으로 독서를 들어서 재미있었다.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 역을 할 때 감탄했다.

영화 마지막에 불탄 도서관에서 책을 한아름 안고 뛰어나오던 숀 코너리를 보는데,

그는 얼이 빠져있었고, 몸에 붙은 불보다 타버린 책 걱정에 초조해했다.

그순간 그는 정말 책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숀 코너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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