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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ook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1ㅣ깊이와 넓이의 연금술ㅣ움베르토 에코와 이탈리아 학자들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1. 1. 14.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움베르토 에코, 리카르도 페드리가 저/윤병언

 

 

 

 

 

 

 

★ 경이로운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권당 8만원.

곱하기 3권으로 총 24만원짜리 철학사이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임편집자라고 해야할까?

에코는 기획자로 서문을 쓰고 물러나있다가 자신의 전공분야 때만 다시 나타난다.

실제 저 복잡다난한 철학사의 각 장들은 이탈리아의 여러 학자들이 맡아서 소개한다.

산만해지기 쉬운 이런 구성에도 불구하고, 책은 다양하고 풍부한 느낌으로 통합되어 있다.

되게 신기한 느낌이다.

이 느낌이야말로 에코라는 학자의 역량일 것이다.

 

역자의 말에 이런 면이 잘 요약되어 있다.

 

철학에는 깊이 없는 넓이도. 넓이 없는 깊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철학적 깊이와 넓이의 연금술에 지나지 않는다.

깊이와 넓이의 관계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와도 흡사하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듯이 깊기만 한 철학이나 넓기만 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깊은' 철학과 '넓은' 철학이 가능할 뿐이다.

 

철학사의 서술 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부류의 관찰을 요구하는 이유는 통사적 관점, 역사철학적 관점 및 시대 구분에 따른 철학사 서술이 이미 오래전부터 주제 비평이나 특정 개념의 역사, 계보학, 문헌학, 고고학, 해석학의 관점이 반영된 다양한 종류의 미시적이고 분석적인 서술로 대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는 저자들이 다수라는 기본적인 설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넓이를 확보하고 깊이를 획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순수하게 독자의 입장만 고려하면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는 넓이의 철학에 가깝다. 왜냐하면 혼돈의 추방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와 시대에 천착하며 발굴해낸 단상들이 역사, 문화, 사회, 학문 및 예술의 발전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비정형화된 ‘철학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진정한 혼돈의 추방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셈이다.

철학사의 깊이는 항상 넓이의 무게에 짓눌리고 방대한 철학사는 항상 스스로의 깊이에 현기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독자들이 감당하게 될 무게와 현기증 역시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하지만 적지 않게 등장하는 새로운 개념들, 새로운 사실과 새로운 해석 들을 발견하고 다른 곳에는 감추어져 있지만 이곳에는 드러나 있는 신선한 사유의 향기들을 만끽하며, 에코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인문학 장인들이 펼쳐 보이는 박학의 세계와 섣부른 판단에 만족하지 않는 무한한 긍정의 힘으로 보다 또렷한 철학의 지형도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8년 5월 윤병언

 

★ 각장 앞에 지도와 연보가 통합된 그림이 한장씩 붙어있다.

철학자들이 활동한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고, 위아래로 그 시대의 중요 철학적 사건을 표기했다.

이 그림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철학의 중심이 점차 서쪽으로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최초의 철학들은 그리스 반도와 그와 마주한 소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된다.

이 그림을 보고서야 단순히 그리스 철학이라 알고 있던 철학자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넓은 세계에서 활동했다는 걸 실감했다. 지중해 세계라 불러야할 영역은 물론이고, 지금의 중동지역까지 연결되는 세계에서 그들은 살았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철학은 유럽대륙으로 가기전 이탈리아 반도에서 한동안 머문다.

로마 제국은 전 시대의 생각을 착실하게 적용하는 우등생이었고,

그들은 역대급의 문명을 탄생시키고, 오래 유지했다. 

고대 그리스의 전성기는 로마에 비교하면 굉장히 짧다.

로마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유산들을 열심히 번역, 모방하여 후세에 남겼고,

회고록, 수상록, 명상록, 등으로 불리는 에세이 형식의 글들을 엄청 남겼다.

어쩌면 로마인들이 고대 그리스를 재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암흑시대라 불리지만, 중세도 이탈리아에겐 철학적으로 가장 밝은 시기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에코를 비롯한 이 책의 저자들에겐 우리로 치면 정약용같은 친밀한 학자인 것이다.

에코는 그 폭넓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전공으로 가면 국학자에 가까운 것 같다.

 

이탈리아 학자들이 그리스와 유럽 대륙의 철학자들에 대해 친밀하게 말하는 걸 보고, 우리가 중국 전통 철학자들에 대해 언급할 때 느끼는 친밀함이 느껴졌다. 지리적 친밀함은 인간에게 어쩔 수 없는 감각인 것 같다. 가끔씩 글쓴 이와 해당 항목의 철학자들의 국적을 구분해서 생각해보고 싶은 욕망이 들었는데,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빠르게 포기했다. 다만, 내가 중국 고대 철학을 대할 때, 어떤 거리감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얻는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중심이 한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발상은 이런 공부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경제, 국력,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중심은 머무르지 않고 이동한다.

지난 시대에는 그래서 이 중심이 미국으로 갔다가 태평양을 건너서 우리나라로 온다는 식의 이야기가 유행했다. 

 

★ 크세노폰이 왜 2류 철학자로 불리는지 이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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