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황동규 저
★ 뒷표지
이 시집의 출발은 1997년 1월 이비인후과 수술로 4시간 30분 걸린, 30여 년 간 키워온 진주종 수술과 그 수술 후유증이다.
건강이 회복되자 IMF 강타가 있었다.
실업자가 넘쳤고, 전방위 자본 전쟁이 다가왔고, 인간의 온갖 잡스러운 것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시건 소설이건 인간의 내부를 버리고 표면을 그리는 게 지금의 우리다.
겉을 그리는 일은 스피디하고 스마트하다.
그러나 인간의 내부는 원래 사람의 성과 속이 힘겹게 만나는 장소이고 표면은 성과 속이 따로 노는 장소가 아니겠는가
따로 노는 게 편하다면, 편하지않게 살고 싶다.
문학의 장래는 정보화 물신화 세계의 거침없는 흐름에 얼마나 아니라고 버티는 데 달려 있지 않을까.
흐름이 방해받을 때마다 정신없이 떠내려가던 사람들은 내가 왜 이러지.
인간이 뭐지.
라고 생각들을 할 것이다.
동강 어라연 근처에서 리프팅을 껄끄럽게 하는 얕은 여울이 되고 싶다.
댐이 생긴다면 그저 인간이 아닌 사람의 마음 속에 기어들어가 붙박이 여울이 되어 귀설은 물 소리를 낼 것이다.
★ 시인의 말
인간의 웃음과 사람의 웃음이 구별되는 이 황당함
인간의 눈물과 사람의 눈물이 구별 안되는 이 당혹감
이들은 나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이 걸림돌들이 이 세상의 내 족적이 아닌가
2000년 1월
★ 이 시집은 황동규가 안식년을 학교로부터 받아 미국 버클리대학에 갔을 때 쓴 시들이다.
버클리는 미국에서도 특별한 학교다.
사립대 명문이 즐비한 미국에서 버클리는 공립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학교 입학에서도 하버드 등 사립대와는 비교가 안되는 싼 등록금부터,
연구의 방향에서도, 공공성을 주요가치로 생각한다.
이 학교의 졸업생 명단은 찬란하다.
기초연구 분야에서 버클리대가 쌓아올린 업적은 엄청나고,
캘리포니아에 위치한만큼 기업가로 성공한 졸업생도 엄청나다.
참 좋은 학교에 가셨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매우 좋을 거라 예상되는데, 이 시집에서 시인은 아프다.
일종의 투병기, 회복기로 읽을만큼 병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
서문 격인 시인의 말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버클리도 가셨는데, 만약 미국인들에게 이걸 번역해서 보여주면 뭐라 할까?
인간과 사람을 다른 말로 쓰셨다.
이 단어들의 번역어로 각각 무엇을 써야하나?
휴먼 이외의 어떤 단어를 염두에 둔 걸까?
인간과 사람을 다른 말로 사용한 이유는 뭘까?
왜 이런 말장난을 할까?
한국어의 감각을 더 파고싶었던 걸까?
시집에서 자주 출현하는 선종, 불교, 원효의 잔향인가?
★
시집에 선종의 어록인 '운문록'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운문록'을 쓴 스님은 중국 사람이다.
절강성 가흥에서 9세기에 태어나 10세기 중반까지 살았다.
이 분의 스승들 중에 유명한 법문을 남긴 분이 있다.
선종은 시와 가깝다.
만났다가 다른 길로 가고, 다시 끝에서 모인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똥막대기다.
황동규는 시인의 말에서 선종의 조사처럼 말하고 싶었던 걸까?
황동규는 이후의 시집에서도 선종의 문답을 자주 인용한다.
원효의 말도 인용한다.
열반에 머문다는 건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선종어록은 읽으면 상쾌한 맛은 있지만, 뭐랄까,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진다.
결국은 엘리트의 언어유희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교육과 전수에서도 소수 위주란 생각도 든다.
계율과 공부를 미루는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하고.
우등생을 위한 가르침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에서 운문종은 종파로서 금방 끝났다.
거의 운문 스님 당대에 끝장났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널리 퍼질 리 없다.
선종은 교육에 관심이 없다.
운문종이 다시 살아난 건 20세기초.
망해가는 청나라에서 태어나 격동의 20세기를 살았던, 오래도 살았던,
허운 스님이 운문록을 재해석해서 천년 만에 살려냈다.
허운 스님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엔 남회근 선생도 있다.
남회근 선생은 허운 스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알고있다.
허운 스님은 거의 120살을 살았는데,
개인적으론 출생년도가 잘못 알려진 게 아닌가싶다.
행정 에러를 감안해도 장수하신 건 틀림없다.
한 30년 깎아도 90세니...
생각 중에는 천년만에 다시 살아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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