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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오비추어리

홍콩배우 오맹달 별세ㅣ인생의 굴곡을 이해한 코믹 연기의 대가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1. 2. 28.

★ 지난해 말, 배우 오맹달(吳孟達)이 마카오의 병원에서 간암치료를 받고있단 뉴스가 들려왔다.

오맹달은 1952년생이니, 이제 겨우 69세. 

치료를 받고 다시 연기를 하실 거로 생각했으나, 몸이 많이 약해져있었다고 한다.

평소 당뇨가 있었고, 심장도 조금 안좋았다고 한다.

최근 몇년간 그는 건강에 특별히 유의하면서 작품활동을 꾸준히 해왔으나, 이제 다시 카메라 앞에 설 수는 없게되었다.

개인적으로 그가 나온 작품 중 마지막으로 본 건 '유랑지구'가 되었다.

 

오맹달

★ 오리와 생강

오래전 본 그의 인터뷰 기사 중에 굉장히 인상적인 게 있다.

기자와 오맹달은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광동식 오리 요리를 먹었다.

오맹달은 사이드에 나온 생강 조각을 오리에 끼워넣어 먹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접시에 올라있는 오리에 주목하지만, 사실 이 생강이 없으면 이 요리는 완성되지 않죠.

맛있는 오리요리엔 생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맹달의 연기야말로 영화에서 꼭 필요한 생강이었다.

그는 홍콩의 내놓으라하는 배우들의 파트너 배우로 이름이 높다.

그중엔 역시 주성치와 함께 한 작품들이 유명하다.

 

'소림축구'를 비롯한 두 사람이 함께 나온 많은 코믹영화에서, 오맹달은 생강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사실 주성치의 연기는 굉장히 튀는 편이다.

그는 다른 세상에 있다.

하지만 오맹달이 곁에 있으면서 현실감을 깔아준다.

 

'소림축구'에서도 그랬지만, 오맹달은 실패한 인생, 평균 이하의 인생, 깔봄을 당하는 인생, 허풍이 심한 양아치를 잘 연기했다. 그는 주성치 옆에서 그보다 더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주성치의 연기를 지우려는, 이기려는 시도는 또 없었다. 매우 절묘한 수준의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주성치와 오맹달

 

★ 오맹달과 주윤발의 이야기도 화제였다.

서프라이즈 티브이에도 방영된 에피소드라고 하는데, 주윤발의 멋짐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이다.

 

오맹달에게 80년대는 영욕이 함께 한 시간이었다.

방송국의 배우모집에 4등으로 합격하여 재능을 인정받았고, 또래들 중 가장 먼저 스타로 올라섰다.

하지만 돈과 명성을 얻은 후, 그는 와인과 파티, 그리고 도박에 열중했다.

그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지만, 더 막대한 돈을 탕진해서 큰 빚을 졌다.

 

오맹달은 가깝게 지내던 주윤발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으나, 주윤발은 단칼에 거절한다.

오맹달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주윤발의 거절이 큰 충격이었고, 절치부심 재기에 진지하게 임한다.

나쁜 평판이 붙어서 캐스팅이 다 막혀있던 때였지만, 유덕화 주연의 '천장지구'에 도전, 배역을 따낸다.배역 이름은 '파숙'난닝구 차림으로 세차장에서 일하는 양아치다.같은 양아치들로부터도 구박받는 사람이다.

 

파숙은 그야말로 홍콩 거리 어느 귀퉁에나 있는 남자였고, 그의 연기는 눈부셨다.이 작품이 크게 히트하면서 오맹달은 재기했고, 결국 영화제에서 상도 받는다.상을 받았을 때, 주윤발이 다가와 축하인사를 했는데, 오맹달은 거절당한 일을 기억하고 주윤발을 생깐다.그런 오맹달을 안타깝게 바라본 사람이 있었으니, '천장지구'의 진목승 감독.그가 보다못해 오맹달을 찾아가 사실을 말해준다.

 

이봐, 자네가 주윤발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안돼.

자네가 내 영화에 출연한 건 주윤발 덕분이야.

나는 사실 자넬 쓸 생각이 없었어. 

술과 도박에 미쳐있는 사람을 어떻게 쓰나?

하지만 주윤발이 내게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하게 자네에게 배역을 달라고 간청했어.

천하의 주윤발이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나. 

 

주윤발 형님의 간지랄까.나라면 오맹달에게 잘난 척 하면서 사실은 말야, 내 덕이라고. 자랑할텐데, 이 남자는 일체의 그런 허장성세가 없다.

 

천장지구의 오맹달과 유덕화

 

★ 그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도, 이상하게 그를 생각하면 먼저 생각나는 건 비디오테이프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영화를 빌려다 편한 차림으로 집에서 본 영화들이 기억난다.

 

처음에는 그냥 웃기는 아저씨네, 정도로 금방 사라질 배우라고 생각했다.

저 정도 코믹배우는 많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나왔고, 한참 사라졌다가도 또 나왔다.

간간히 진지한 영화들에서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는 거의 200편에 가까운 영화를 촬영했다.

한국인인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떤 장르의 대표 단어가 되었다.

 

오맹달은 '홍콩영화' '코믹영화' '주성치영화'의 필수요소였다.

 

오맹달

 

★ 그의 고향은 푸젠성 샤먼이다.

대만과 마주보고 있는 광동의 항구도시.

7살 때 홍콩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지난 세기 말, 홍콩에서 스타가 되었고, 대륙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은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사틴구의 병원에서 임종했다.

 

3번 결혼했고, 쌍둥이 아들을 포함해 5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 분 덕분에 참 많이도 웃었다.

그 시간에 감사한다.

 

오맹달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유랑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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