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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Movie

터미네이터3, 16억짜리 입자가속기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1. 1. 16.

티브이에서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연달아 해주었다.

아놀드 아저씨가 청소년 존 코너의 뒷덜미를 잡아채 오토바이 뒤에 태우는 걸 보고, 참 잘 찍었네 하고 일하다보니, 어느새 존 코너는 멍청이 어른이 되어있었고, 클레어 데인즈와 함께 뛰어다니고 있었다. 2편과 3편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산으로 가기 시작한 영화가 3편이기 때문이다. 3편부터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1편2편이 공들여서 쌓은 역사를 부정하는 쪽으로 간다. 그 개고생을 하며 막은 기계의 공격을 아냐, 그거 막지못했어. 하고 틀어버리니 허무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시간대, 다른 인물들의 전투를 그리는 편이 나았을 뻔 했다. 그런데, 3편을 보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입자가속기가 나오는 장면이다.

 

T3이 개봉한 해는 2003년. 

입자가속기는 꿈의 과학시설이었다.

영화에서 입자가속기를 처음 본 건 체인리액션이었던 것 같다.

과학자 키아누 리브스가 연구하는 장소가 입자가속기였고, 역시나 악당의 공격을 받고 폭발한다.

이때부터 입자가속기는 뭔가 되게 위험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대중에 퍼졌다.

어떤 실험을 하면 차원에 구멍이 생겨 지구가 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는 식의 괴담도 많았다.

실제 이걸 항의해 실험을 중단해달라는 소송도 있었다. 

전세계에 입자가속기는 계속 늘어났지만, 아직 입자가속기 사고는 없었다.

되려 과학자들에게 위험을 극복하며 연구를 하는 이미지를 추가시킨 것 같다.

 

T3에서 입자가속기는 영화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영화 내내 멍청한 행동으로 짜증을 유발하던 존 코너가 처음으로 의미있는 꾀를 내는 장면이기 때문.

그는 액체로봇의 추격을 미리 예상하고, 입자가속기를 작동시킨다.

입자가속기가 자력을 발생시킨다는 걸 알고 있는 똑똑한 청년이 되는 순간이다.

원형으로 이어진 파이프 라인을 따라 주인공들이 액체로봇에게 쫒기는 장면은 디자인이 잘 되었다.

검색해보니, 이 장면을 위해 입자가속기 세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입자가속기를 만들었다고?

깜짝 놀라 자세히 찾아보니 부분적으로만 만들었다.

그래도 150만 달러가 들었다. 한국돈으로 16억이 조금 넘는 액수.

배우들이 원형세트를 여러번 돌았고, 세트의 끝이 보이면 편집했다고.

 

영화를 보고 입자가속기란 거대한 자석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입자의 가속을 위해 코일을 감아 자력을 발생시킨다는데, 하여튼 뭔가 대단하다.

그렇게 강력한 자석 옆에 접근하면 어떤 느낌일까?

 

★ 입자가속기 현황

얼마전 오시이 마모루의 수필집에서 그가 일본에 입자가속기, 선형을 건립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걸 읽었다. 흥미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일본은 몇개나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 하나도 없어서 오시이 마모루가 빡쳐서 나선 건 아냐? 하고 희망회로를 돌리기도 했다. 

 

검색해보니, 일본은 세계적으로 입자가속기의 강국이다.

노벨과학상이 왜 그렇게 쏟아지는 지 알 것 같다.

각각의 시설을 평가할 선구안이 없기에 단순하게 숫자만 확인할 뿐이지만.

일본은 12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미국이 8개, 독일이 6개일 뿐인데...

 

우리나라는 현재 2개인데, 포항공대의 것을 2개로 쳐준다.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 하나 더 짓기로 했고, 장소는 청주인 듯.

이러면 총 3개가 되는 셈이다.

 

포항의 입자가속기는 국가시설로 연구자들이 실험을 신청하면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꼭 포항공대만 사용하는 시설이 아니고 나라의 모든 연구자들에게 열려있는 시설이라고.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굉장히 잘 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입자가속기는 유지비도 많이 들어가고, 뭣보다 한번 가동할 때 들어가는 전력도 무시무시하다.

포항의 경우, 한번 가동할 때, 잠실 롯데월드만큼 전기가 필요하다고.

 

입자가속기는 설치된 나라의 과학 연구를 크게 자극하고 발전시킨다.

동시에 이야기 세계에 주는 자극도 크다.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그 막강한 시각적 충격으로 뭔가 다른 것을 상상하게 한다.

아주 작은 세계의 일을 알기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시설을 지어야 하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가 3개의 입자가속기를 가지면, 지금보다 더 나은 SF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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