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전국 칠웅 중 가장 작았던 나라
- 정직, 충절, 의리를 유난히 중요시한 나라
- 당대 최고의 칼, 활, 쇠뇌를 제조했다.
- 전국 시대 신흥 3국(위, 조, 한)의 일원.
- '조씨고아' 이야기의 주인공.
- 불세출의 학자, 한비자의 나라.
- 후대 초한쟁패기의 유방의 참모, 장량의 나라.
<더 깊게 읽기>
1
풍운전국 4회, 한나라편은 건국 전으로 올라가 시작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궐. 그는 진(晉)나라의 신하이다. 진왕은 권신 도안고의 말을 믿고, 대대로 나라에 충성했던 조씨 가문에 멸문의 벌을 준다. 도안고의 위세에 모두들 입도 뻥긋 하지 못하는데, 한궐은 홀로 왕을 찾아가 조씨 가문을 벌하더라도 대는 이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 한궐은 어렸을 때 매우 가난했는데, 이때 조씨 가문이 그를 도와줬다고 한다. 한궐은 그 은혜를 잊지않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위기에 빠진 조씨를 위해 나선 것. 이런 의리있는 성품은 이후로도 한씨 가문의 특징이 되고, 그래서 한나라는 협객 풍토가 형성된다. 진왕은 조씨가문의 아들 한명을 살려주고, 한궐은 그 아이를 거두어 키운다. 그런데 이 때 간신히 살아남은 조씨 아들이 영민하고 훌륭했던 모양이다. 조씨는 다시 부흥하여 나중엔 나라를 건국한다. 그게 전국 칠웅 중 하나인 조나라.
이렇듯 건국 이전부터 조나라와 한나라는 하나의 집안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서쪽의 진(秦)나라가 강성해져 침략할 때도 조와 한은 연합이 잘 되었고, 나라를 지켰다.
그런데 이 의리를 중요시하는 풍토가 꼭 나라에 도움이 된 건 아니다. 한나라는 건국 이후 나라의 규모는 작지만, 착실하게 국력을 쌓아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침공, 멸망 직전까지 밀어붙이는 등, 기세가 좋았다. 하지만, 4대 군주 시절, 어이없는 일로 군주가 살해당한다.
고위직 신하 2명이 사이가 극도로 안좋았는데, 두 사람은 왕 앞에서도 칼을 뽑아들고 싸우곤 했다. 결국 한쪽 신하가 킬러를 섭외한다. 그런데 일을 시키는 방식이 교묘하다. 신하는 시장의 백정에게 인간적으로 잘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곤궁을 넌지시 토로한다. 백정은 자신과 가족에게 잘 대해준 어르신을 위해서 살인을 결심하는데, 자신과 신하의 가까운 관계가 들통나지 않도록 증인없는 살인을 결심한다. 그리고 회의가 벌어지는 관청으로 들어가 대상이 된 신하와 그 곁에 있는 자들을 살해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우연히 왕이 있었다. 왕은 어이없어하며 살인을 말리려 하였으나, 백정은 왕까지 죽여버린다. 풍운전국에서는 약간 우발적인 사고로 표현한다. 왕은 설마 자신까지 죽일 줄은 모른 상태에서 어이없이 죽는 것엔 역사책과 드라마가 같다.
킬러 백정은 이 다음에도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위해 스스로 얼굴을 난도질한 다음, 자결한다. 풍운전국은 이 기겁할만한 살인현장을 보여주고, 카메라를 천천히 뒤로 뺀다. 그리고 나오는 나레이션이 엄청나다.
한나라 사람들은 모두 이 행동을 의리있다고 칭찬했다.
2
한참 후이지만, 초한쟁패기에 유방의 참모로 대활약한 장량이 이 한나라 왕실의 후손이다. 그는 한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에 대해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고, 전 재산을 털어 킬러를 고용한 뒤, 같이 진시황 암살에 나선다. 장량의 암살 시도는 대단한 것이 저 유명한 형가조차 암살에 실패한 후에 죽었지만, 장량은 암살시도에 실패했지만 살아남는다. 진시황의 전성기 때 감행한 암살시도이다. 진시황은 일곱 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완성한 다음, 전국을 순회하던 중에 장량의 습격을 받았다. 한나라 사람들의 기질에 질겁을 했을 것이다. 장량은 이후 유방의 진영에 합류하여 결국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한자는 다르지만 한나라를 부활시켜 중국의 대표적인 왕조로 만든다. 실로 무서운 집념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배신이 없었고, 똘똘 뭉치는 단합심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기에 보여준 한나라 권력층의 모습은 비루하고 야비하고 비열하다. 건국 초기 박수를 맏아 마땅했던 정직한 성품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풍운전국은 이 부분을 질문하고 파고든다. 그리고 제작진이 내놓는 멸망의 길로 간 원인은 이것이다.
3
재상 신불해의 술치.
신불해는 정나라 사람으로, 본국이 망하자, 한나라로 와 상국이 되었다. 그는 한나라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15년 동안 통치했다. 그동안 역사책에선 그에 대해서 한나라를 강국으로 이끈 명재상이란 평가가 대부분인데, 풍운전국은 다른 평가를 내린다.
신불해는 법가 사상가로 관리를 다룰 때 가혹했다. 그는 잘못을 범한 관리의 코를 베었고, 태형도 자주 가했다. 군주 입장에선 관료들이 빠릿빠릿해지고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좋아했으나, 관리들은 신불해의 전횡 속에 군주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가질 수 없었고, 군주와 신하들의 마음이 분리되었다. 작은 나라였던 한나라에 지도층의 분열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군주는 점차 고립되었고, 신하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아부의 길로 가거나, 극도로 위축된 처세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풍운전국이 여기서 전하는 테마가 매우 흥미롭다. 제작진은 한나라의 건강한 국민성이 여기서부터 바뀐다고 말한다. 참 날카로운 지적이다. 우리는 보통 어떤 나라의 국민성을 하나로 요약해서 말하고 머리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고정불변의 국민성이란 것은 존재하기 힘들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일상에선 고정불변의 현실처럼 느껴지지만, 시간 단위를 늘려서 관찰하면 커다란 변화를 가진다. 풍운전국은 지도층의 인사정책, 관리들 운영방식이 결국 국민성을 바꾼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어떤 것이며, 지금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을까?
한편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풍운전국은 신불해의 정치를 술치란 말로 부른다. 또 신불해는 노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비자의 사상을 응용했다고 한다. 결국 법가라는 이야기인데, 진나라의 상앙, 이사의 법가는 성공했고, 왜 신불해는 술치라 부르나? 신불해와 상앙의 차이는 무엇인가? 상앙도 신불해 못지않게 엄격했고 잔인했고 가혹했다.
4
한나라 말기. 한나라 왕과 재상들이 벌인 쪼잔하고 비열한 외교 정책들을 보자. 풍운전국에서 보여주는 건 2가지.
장평대전은 고대에 벌어진 최대 전쟁으로, 무려 40만이 생매장당한 조나라는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풍운전국은 이 장평대전에 한나라의 음모가 있었고, 그것이 결국 혈맹이나 다름없던 조나라를 멸망시켰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음모란 무엇인가?
진나라의 침공으로 한나라는 국토가 위 아래로 쪼개진다. 윗쪽의 상당이란 지역은 왕이 있는 아래쪽과 분리된다. 왕과 재상은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대책을 세운다. 진나라에 항복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이와 동시에 상당과 국경을 맞댄 조나라에도 상당을 바친다고 하자. 만약 조나라가 땅에 욕심이 있다면 거저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나라가 상당을 먹는 건 진나라는 허락할 일이 없다. 수많은 군인들을 잃으면서 겨우 얻은 땅을 공짜로 조나라에 준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그럼 결국 조와 진은 전쟁을 벌일 것이다. 그렇게 두 나라가 싸우면 우리 한나라는 전쟁을 피할 수 있다.
한나라 왕은 묘책이라 좋아하며, 상당의 태수에게 두 나라에 동시에 항복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언뜻 들으면 천재의 묘책처럼 느껴지지만, 대국적으론 역시 어딘가 바보스런 자해끼가 있다. 하여튼 조나라는 한나라의 제의를 넙죽 받았다가 진과 전쟁을 벌이게 되고, 결국 40만 젊은이가 죽는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멸문할 뻔한 조씨를 구한 것도 한씨, 오래되고 강력한 조나라를 멸망시킨 것도 한씨다.
사실 장평대전 껀만 해도 한나라 왕의 음모는 비난만 받을 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빼앗기는 땅, 싸움 좋아하는 형들끼리 싸우다 지치게 두자는 건 약소국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헛웃음이 터지는 이야기다. 정말 나라란 이렇게 망하는 거구나 싶은 이야기.
5
한나라엔 정국이란 남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수리기술자로 수로를 만들고 치수를 하는데 뛰어났다고 한다. 천하제일의 토목공학자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한나라 왕은 정국을 불러서 이렇게 말한다.
너, 진나라로 망명해라. 가서 진나라의 왕이 대규모 수로공사를 일으키도록 부추겨라.
어리둥절한 정국에게 왕은 자세히 설명한다.
공사가 크면 클수록 진나라의 국력과 관심이 공사에 집중되니, 한나라 침공이 없을 것 아닌가.
정국은 한나라의 밀명을 받고 진으로 간다. 이때 진의 왕은 진시황. 그는 정국의 기술을 높이 사서 수로공사를 맡긴다. 그런데 중간에 그가 한나라의 간첩이며 정규적으로 한나라에 진의 정보를 넘기고 있단 첩보가 입수된다. 진시황은 정국을 불러 취조한다. 바짝 쫄은 정국은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절규한다. 그런데 이때 진시황은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의 연기가 매우 디테일하고 훌륭하다.
진시황은 칼을 뽑아 정국 앞으로 간다. 당연히 정국은 벌벌 떨며 납짝 엎드려 있다.
수로공사를 해서 국력을 낭비하라고 했단 말이지.
진시황은 미소짓는다.
정국.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 해라.
단, 이제부턴 진나라를 위해서 하는거다.
공사가 완성되면, 네 이름을 수로에 붙여주겠다.
정국은 감사의 절을 몇번식 올리고, 살아서 대전을 나간다.
진시황은 약속을 지켜 수로가 완성되자 정국의 이름을 붙여 '정국거'라 했다.
진시황의 웃음과 태도에선 실질 강건한 국가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다른 나라의 인프라 건설을 도와 그 나라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가?
다른 나라의 힘을 키워, 다른 나라를 견제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너희들은 나에게 최고의 기술자를 보내준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를 나의 신하로 쓰겠다.
외교와 정치의 발상에서 진과 한은 너무 차이가 컸다.
6
한나라 왕은 숙부였던 대학자, 한비자를 만나 부탁한다.
진나라 왕이 숙부님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한비자는 왕이 부탁하는 건 결국 일종의 간첩 활동이란 사실을 안다. 똘똘한 진시황과 그의 신하들이 자신의 간첩활동을 모를 일 업기에, 입지가 매우 좁다는 것도 예상. 하지만 그는 왕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진으로 간다.
풍운전국은 한비자가 죽음의 길로 가는 장면을 어전 회의로 묘사한다.
진은 다음 전쟁 상대를 고르는 중이다.
한과 조.
어느 쪽부터 칠까를 논의하는데, 진시황은 한비자에게 먼저 묻는다.
한비자는 조를 먼저 치라고 말한다.
그러자 이사와 요고가 비웃는다.
그들은 한비자는 한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는 간첩이라고 주장,
다음 장면에서 한비자는 감옥에 있다.
이사가 들어오고, 술상을 한비자 앞에 내려놓는다.
내가 해줄 건 이 정도 밖에 없군요.
이사와 한비자는 동문으로, 입장은 다르지만 같은 학자로 서로 인정하는 사이, 풍운전국은 뛰어난 학자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만, 진시황과 이사를 악인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여기서 제작진의 입장은, 오히려 대학자를 간첩으로 만들고, 사지로 몰아넣은 한나라 권력층을 비판하는 쪽에 가깝다.
7
풍운전국 전반에 걸쳐 노장 계열 사상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전국시대에 법가는 특별한 학파라기 보다, 개혁정치의 기본이론이었던 것 같다. 모든 나라에서 강국의 길로 접어들 땐, 어김없이 법가 정치인들이 있다.
한나라는 약소국이다. 국토가 작고 인구가 적다. 어떤 길을 선택했어야 생존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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