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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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외지고 가장 비천했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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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제자백가도 나오지않은 문화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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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사람들은 멸시했고, 북방의 오랑캐들은 싸움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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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후의 승자가 되어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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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통일은 시황제 혼자가 한 게 아니라 그 위로 일곱 왕들이 바톤을 이어가며 만들어간 과정이다.
<더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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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는 다른 일을 하면서 보느라, 메모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확한 개념이 남지않고, 어떤 이미지들만 남았다. 가장 강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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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진시황 혼자의 업적이 아니라, 선대 왕들의 노력이 쌓인 것. 진시황은 과정의 끝에 있을 뿐, 선대의 공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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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왕들도 확고한 정치적 기반이 없었다. 다들 불안한 위치에서 인내하면서 기회를 살려나갔다. 고난과 인내 속에서 길을 찾아 걸어갔다. 이것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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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이전, 일곱 왕들의 인생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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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는 되게 오래된 나라여서, 선조를 찾아 올라가면 기원전 9세기가 된다. 특이한 건 이 가문은 말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는 것. 중원과는 다른 서쪽지방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킹1 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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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초석을 놓은 사람을 찾자면, 기원전 4세기의 헌공이 적당하다. 풍운전국은 헌공의 어린 시절을 잠깐 보여준다. 헌공은 어린 시절 태자였으나, 왕인 아버지가 죽자, 작은 아버지가 왕위를 찬탈했고, 헌공은 살기위해서 위나라로 도망친다. 그런데 이때 위나라는 문후가 나라를 잘 다스리던 전성기로, 오기, 이극, 서문표, 평민 장군 악양 등이 부국강병의 모범국을 만들고 있었다. 이때의 헌공에게 왕이 될 거란 희망은 없었겠지만, 위나라의 정치가 보여주는 찬란한 모습은 학습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서쪽 구석에 처박혀 지저분한 내부 권력다툼에 열중하는 고향의 꼬라지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살기위해 도망간 망명객의 서러운 처지에서 미래를 위한 정치 학습이란 게 가능할까? 하지만 헌공이란 청년은 먼 미래를 보고 위나라에서 중원의 문화와 정치를 착실히 배운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왕이 되어 어마어마한 개혁을 해내기 때문이다. 어떤 개혁?
<헌공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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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제 폐지(진은 전국 중 가장 늦게까지 순장제를 유지했고, 이 때문에 정권교체기마다 인력손실이 막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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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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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작통법 (연좌제의 일종으로 백성들을 단위로 묶어 강력히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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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에 빼앗겼던 땅을 전쟁으로 회복한다. 망명객으로 오래 머물렀던 나라를 상대로 한 전쟁인데, 망명객일 때도 이 전쟁에 대한 준비가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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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서쪽 변방의 소국을 중원의 나라들과 비벼볼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가진 나라로 만들었다.
<킹2, 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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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공이 대단한 게, 죽으면서 후계문제를 확실하게 했다. 자신이 왕이 되는 데 죽도로 고생한 것을 반복하지 않은 것이다. 똑똑한 둘째 아들을 선택해 왕위를 물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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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공은 23년 동안 널리 인재를 불러모으고 나라를 개혁하는데 열중한다. 개혁의 적임자로 위나라에서 망명한 상앙을 발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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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공과 상앙은 재미있는 일화를 남겼다. 상앙은 왕을 만나기위해 뇌물을 뿌렸는데, 첫번째 만남에서 왕도정치를 이야기하니, 효공은 재미없어 하며 졸았다고 한다. 아차싶은 상앙. 다시 뇌물을 써서 두번째 만남을 가졌을 땐, 법가에 의거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이야기하니 효공이 눈을 반짝이며 들은 후, 상앙을 재상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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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은 진나라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위해 퍼포먼스를 벌인다. 커다란 나무기둥을 광장에 두고, 이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고 말한다. 백성들은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보기만 하는데, 이럴 때 꼭 '함 해보자'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풍운전국에선 약간 미련하게 생긴 뚱보 아저씨가 기둥을 메고 북문으로 간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데, 북문에 도착한 다음 그가 금을 하사받자 얼굴들이 하애진다. 이것이 상앙이란 법가 행정가가 백성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그리고 상앙은 노비제를 폐지한다. 국가의 인력을 풀로 사용하기위해선 중산층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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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앙은 귀족들과는 격렬하게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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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의 엄격한 법집행에 가장 먼저 대든 건 태자였다. 차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저항할 때, 상앙은 그리고 효공은 어떻게 하는가? 여기서 효공이 자식을 생각해서 물러나면 개혁은 물 건너간다. 효공은 독한 남자였다. 상앙의 편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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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은 태자의 죄를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들에게 묻는다. 공식 후견인은 왕의 형이었는데 벌로 코를 베어버리고, 공식 스승은 얼굴에 죄인 문신을 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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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형은 코를 잘린 다음, 가면을 쓰고 평생을 살아야했기에 은거한다. 상앙에 대해 이를 갈면서 복수를 꿈꿨지만, 효공은 상앙의 편에 서서 꿈쩍도 하지않았다. 효공의 형, 영건도 입장이 딱하다. 아버지가 장남인 자기가 아닌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도 서러운데, 코까지 날아가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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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전국은 이 부분에서 부가정보를 하나 던져준다. 진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귀족 전통이 약했다고 한다. 약한 귀족 전통이 되려 신흥 세력이 흥기할 수 있는 토양으로 작용한 것. 인생은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는 일이 흔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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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공의 생각이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정치적 목표를 가졌기에, 형의 코를 날리고, 아들의 생기를 누르는 법집행에 찬성할 수 있었나? 왜 이렇게 결사적으로 개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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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상앙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진다. 위나라 편에서 왕의 이죽거림을 당할 때만 해도, 저 능력있는 인재를 왜 안쓰나 싶었다. 또한 스승이 왕에게 상앙을 추천할 때 사용하는 말이 너무 독하다고 생각했다. "쓸 거면 재상으로, 안쓸거면 죽이세요" 왜 이렇게 독하게 추천하나? 그때는 독한 말을 내뱉는 스승이 이상했는데, 이제 7화를 보면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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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의 정치는 가혹하단 말과 떨어질 수가 없다. 엄격한 법집행은 범죄자를 우르르 양산하고, 원한이 나라에 쌓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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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을 가르쳤던 위나라의 스승은 상앙이 가진 잔인한 성품, 가혹한 일처리를 미리 보았던 건 아닐까? 또한 위나라 왕도 상앙을 만나본 뒤, 쌩깐 건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판단만은 아니었다. 상앙을 기용하면, 기득권 층과 격렬한 충돌을 가져올테고, 그건 정권에 이득이 적다고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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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공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상앙은 법가 철학으로 강력한 군사국가를 만든다. 전투의 공을 상대의 머리를 딴 갯수, 즉 수급으로 정하는 것도 상앙의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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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전국에선 진나라 군인들이 저마다 손에 사람머리를 담은 보자기를 들고 장부에 올리려고 뛰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매대에 사람머리가 담긴 보자기들이 쌓이는데, 보자기마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진나라 병사들은 무술이 뛰어난 게 아니라, 이런 보상체계때문에 악랄하게 싸운 것이다. 이런 군인들을 누가 막을 수 있나? 저 냉병기 시대에...
<킹3 혜문왕, 재위기간이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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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은 왕이 죽은 다음에 온다. 상앙을 절대지지하며 개혁을 이끌던 효공이 죽었다. 그리고 태자가 왕에 오르니 혜문왕이다. 태자 시절 상앙과 충돌했다 큰 아버지의 코를 날린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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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전국은 상앙의 집무실로 간다. 상앙의 문객으로 보이는 남자가 상앙에게 고언한다. 이제 효공이 죽었으니 은거를 하던가, 망명하라.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진나라에 쌓였다. 실제 상앙에게 코를 베였던 효공의 형, 영건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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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때 상앙은 문객의 충정어린 고언에 납득하지 못한다. "내가 이 나라에 해준 게 얼만데?" 하는 눈치. "깡촌을 나라답게 만들어 이젠 나머지 6국이 다 합쳐야 우리와 붙을 정도로 강국이 되었다. 그게 다 내 공이다." 문객은 상앙의 자신감을 보고 저 사람은 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듯, 얼굴에 공포가 가득하다. 풍운전국이 참 대단한 게 이런 단역들의 연기가 적절하고 고급하다. 연출가가 내공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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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혜문왕은 어떤 선택을 하나? 그는 상앙을 체포하고 거열형에 처한 뒤, 3족을 멸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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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왕은 개인적으로 복수한 것일까? 태자 시절 당한 무시를 잊지않고 복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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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혜문왕은 상앙에게 당했던 큰 아버지의 청원을 받아 상앙을 잔인하게 죽이지만, 되려 상앙의 정책은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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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노선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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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미우면 그가 했던 일들도 미운 게 사람 마음이 아닌가, 진나라는 어떻게 미운 사람만 제거하고, 미운 사람의 정책은 그대로 계승할 수 있나? 혜문왕의 정치노선은 범인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킹4 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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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통틀어 이 왕보다 이상하게 죽은 왕은 없을 것이다. 이 청년은 힘자랑하려고 청동솥을 들었다가 힘이 딸려 떨어뜨린 솥에 자기 다리를 찧고 과다출혈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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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군주들이 개혁에 전념한 에피소드가 많기 때문에, 무왕의 어처구니없는 인생을 다룰 필요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풍운전국은 불과 4년 밖에 재위하지 못한 이 어린 청년의 이야기를 공들여서 다룬다. 왜 이런 구성을 했을까? 처음엔 납득이 안되었는데, 가만히 글을 쓰며 생각하니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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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전국이 보여주는 무왕의 에피소드는 이렇다. 무왕은 19살에 즉위해서 23살에 죽는다. 드라마 속 무왕은 사실보단 나이가 좀 들어보인다. 그는 현대의 투포환 경기장 같은 걸 소규모로 만들어놓고 커다란 돌을 가장 멀리 던지는 자를 근위 장군으로 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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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 무왕은 근위장군과 함께 주나라 왕실에 간다. 주나라 왕궁 앞 계단에는 아홉개의 청동솥이 놓여있다. 하나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지낼 때 사용한 솥으로, 주나라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성물이다. 그런데 무왕은 그 솥을 가만히 보더니, 주나라 왕에게 말한다. "이 솥, 내가 한개 가져가고 싶은데?" 주나라 왕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대답한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솥은 이동한 적이 없습니다. 옮기기는 커녕 들어본 사람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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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솥을 옮길 수 있으면 가져가도 좋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된다. 무왕은 근위장군에게 먼저 솥을 들어 옮기라고 명령한다. 떡대가 엄청난 근위장군은 솥을 들기는 하나, 이동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여기서 물러나면 될 것을, 주나라 왕과 사람들의 비웃음이 무왕을 빡돌게 한다. 무왕은 직접 소매를 걷고 솥 앞으로 간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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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엉뚱한 사고가 중국 최초 통일을 논하는 50분 드라마에 끼어들 가치가 있나?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죽음을 7화에 넣은 건 무슨 생각일까? 너무 드라마가 무겁단 이야기를 들어 연성화시키는 걸까? 하지만 나중에 역사책을 보니, 진시황이 통일을 한 이후에 이 주나라 솥들을 찾아서 진의 수도로 가져오라고 명령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통일전쟁의 혼란기 속에 주나라의 솥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강에 빠지기도 하고, 사라진 모양이다. 진시황은 또 왜 솥을 찾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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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솥을 드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인 행동이다. 하지만 무왕은 시도했다.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 큰 솥을 무리하게 붙잡고 무리하게 들어올리고 눈알이 뻘개진 채 용을 쓰며 옮기는 무왕을 보는데, 저 모습이야말로 천하의 인정을 받고 싶은 서쪽 후진국의 몸부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웃을 지 모르지만, 진나라 사람들에겐 가슴이 아픈 순간일 것이다. 문화, 경제적으로 더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전국의 나라들로부터 받은 멸시들. 무왕은 어리석은 청년일수는 있어도, 그 마음엔 절실한 지도자의 진심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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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찾고싶어했던 솥은 단순한 제기나, 정통성을 인정받는 상징물이 아니라, 바보처럼 죽은 선조 무왕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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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무왕은 죽음은 후폭풍을 몰고왔다. 할아버지 대부터 착실히 후계문제를 해결해 견고한 권력으로 연속적인 정책집행을 해오던 진나라가 엉망이 된 것이다. 내부 권력 다툼이 다시 시작되었다.
<킹5 소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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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56년. 기원전 3세기의 절반을 혼자 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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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왕은 왕을 꿈꿀 수 없는 서자의 신분이었고, 연나라에 볼모로 가있었지만, 엄마와 삼촌의 대활약으로 왕위에 오른다. 그래서 재위기간의 전반기는 실질적인 권력은 엄마하고 삼촌에게 넘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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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전국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전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왕과 태후가 먼저 와 있고, 한참 후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재상이 들어온다. 이게 삼촌이다. 그는 왕에게 잘못한다는 의식이 아예 없고, 기분좋아 한잔 했다는 식이다. 태후도 취한 동생을 보며 웃기만 할 뿐이다. 왕은 비굴하게 재상에게 건강 잘 챙기시라고 아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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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비굴한 왕의 모습에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 소양왕은 나중에 장평대전을 벌여 조나라 40만을 생매장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56년의 긴 재위기간을 활용해, 그는 전반기 내내 납짝 엎드려서 찬스를 본 뒤, 엄마와 삼촌의 권력에 빈틈이 생겼을 때, 바로 치고들어가 모두 몰아낸다. 그래도 소양왕은 이들을 죽이진 않고, 외가 사람들 모두 수도에서 추방하고, 엄마는 별궁에 유폐한다. 그래도 나름 문명적인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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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명군 이미지다. 사실상 통일을 위한 기반은 이 사람이 만들었다. 이 사람에게 수명이 10년쯤 더 주어졌다면 통일은 이 사람이 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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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왕의 재위기간이 길었다는 건, 여불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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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을 돌며 장사를 하던 여불위는 여러 나라의 상황을 잘 알았다. 그가 진나라에서 조나라로 인질로 끌려온 자초를 후원한다. 풍운전국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여불위의 정치 배팅에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조나라에 망명한 수많은 인질 귀족들 중에 자초를 선택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자초가 아니다. 진나라 인질이다. 결국 여불위는 진나라의 미래를 가장 밝게 본 것. 진이 가장 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그 나라의 예비 왕에게 배팅한 것이다. 여불위는 왜 진이 최고 강국이 될 거라 봤는가? 그 이유가 소양왕인 것 같다. "저 정도 정치라면 천하를 먹겠어." 그런 계산이 끝났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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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건, 이 여불위가 자초에게 배팅한 후, 진나라의 왕위계승이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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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소양왕의 뒤를 이을 장남인 태자가 위나라에서 살해당한다. 그리고 차남이 효문왕으로 왕에 올라 킹6가 되는데, 불과 3일만에 죽는다. 사고란 이야기도 있고, 여불위가 살해했단 이야기도 있고, 당시 53세면 많이 산 거로, 아버지 소양왕이 너무 오래 왕노릇을 하셨던 게 문제라는 이야기도 있다. (현대 영국도 찰스 황태자는 죽을 때까지 왕을 못할 수도 있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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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7가 여불위가 후원한 자초인데, 재위기간이 4년이다. 사실 자초가 오래 살았으면 여불위의 꽃길도 더 오래 갔을 것이다. 자초는 여불위에게 엄청난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우리 권력을 둘로 나누어 다스립시다. 하고 고백맹세했던 사이니까. 하지만 자초가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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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8이 영정. 진시황이다.
<킹8 진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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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전국에서 여불위가 여씨춘추의 편찬을 마친 뒤, 진시황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여불위가 만만치 않은 것이 진은 문화적 후진국으로 단 하나의 제자백가도 나오지 않았다. 그랬기에 여불위는 진의 이름으로 당대의 모든 사상을 모은 백과사전을 편찬하려 했던 것 같다. 멸시의 대상이었던 진의 문화수준을 일거에 높이는 일로 백과사전 편찬을 기획한 것이다. 여불위는 여씨춘추를 적은 죽간을 성문 앞 광장에 걸고 여기서 고칠 것을 한자라도 발견한 사람에겐 상금을 준다는 선포를 했다. 이것도 어딘가 허세끼가 있다. 무왕이 청동솥을 드는 행동과 비슷한. 다만 학문의 집대성을 직접 진두지휘한 여불위의 행동은 과연 천하의 거상이며, 일국의 재상의 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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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엄마는 노애와 생활하며 아이 둘을 낳고, 그 아이에게 왕자리를 주고싶어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방금 전에 본 것 아닌가 싶었다. 소양왕의 어린 시절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소양왕도 어린 시절 엄마가 삼촌과 함께 권력을 해먹었고, 소양왕의 엄마도 정부를 공식적으로 지정하고 해피한 생활을 했다. 소양왕과 진시황. 두 사람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두 명 다 참을 때는 참았다가, 일거에 복수에 나서고, 완벽하게 진압한다. 7화에서 진시황은 노애의 반란을 진압한 뒤, 엄마에게 간다. 그리고 이복동생들 두 명을 죽이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아이들만은 살려달라 처절하게 간청하지만, 진시황은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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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역사책에서 진시황은 이상할 정도로 여자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걸 읽은 적 있다. 진시황은 유명해도 그의 아내, 황후 이야기는 없다. 호해가 나왔으니 황후가 있는데도 그녀는 유명한 이야기가 없다. 후궁도 별 언급이 없다. 아마도 진시황은 기상천외한 엄마의 행동에 질려 여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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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통일의 과정은 길었다. 7화를 보면, 진시황은 오히려 통일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바통을 이어가듯 부국강병의 길을 가는 진나라 왕들이 진시황 이전에 7명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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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렵게 한 통일인데, 이건 진정한 통일이 아니었다. 게임의 베타버전처럼 금방 에러가 나서 망해버렸다. 중국 대륙에 완전체 버전이 나오려면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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