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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Drama

더 크라운 시즌 4ㅣ다이애나 스펜서와 마거릿 대처,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0. 12. 27.

 


> 요약
시즌4에선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 2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마거릿 대처와 다이애나 스펜서.
최초의 여자 총리와 신데렐라 며느리.

드라마 내내 대처와 다이애나가 공격수 입장에서 여왕에게 문제들을 던지고, 여왕은 노련한 수비수가 되어 일을 처리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헬레나 본헴 카터가 연기하는 마거릿 공주가 가세하여, 따로 한부를 맡아 가슴아프고 쓸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노트
역사가 현재와 가까워지면서, 등장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많아진다.
이전 시즌들과 달리, 화면에 등장한 인물들이 어떻게 언제 죽는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죽음을 알고있으니, 살아있을 때 행동하는 인물의 모든 것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끝을 알고 보는 연극같은 느낌이다.
특히 인상적인 인물들을 기록해둔다.


1 루이 마운트배튼 경
1부가 시작되어 마운트배튼 경이 등장할 때, 마음이 섬찟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는 손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갔다가, IRA의 폭탄테러에 사망한다. 

 

배가 부두를 떠나는 장면, 
손자들과 낚시대를 들고 이야기하는 장면.
그동안은 가족과 함께 살해되었다고만 알고있었는데, 그게 저렇게 어린아이들인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같이 살해되었기 때문에, IRA는 참 잔인하단 생각이 들지만, 저 당시 영국 정부가 아일랜드에서 한 일도 엄청나게 잔인했다. 

GOT의 라니스터 할아버지는 작품마다 참 강렬하게 죽는구나 싶다.


2 마거릿 대처
또 한 사람. 마거릿 대처도 등장할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저 여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다.
치매에 걸려 고생하다 죽었다.

드라마를 통해 대처에 대해 알게된 것들은 이렇다.

대처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찬성했고, 그의 아들은 남아공에서 사업을 하고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거의 전세계가 남아공의 반인도적인 정책에 항의할 때도, 영국과의 경제협력을 이유로 대처는 남아공의 백인정권 편에 선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이 문제로 큰 충돌을 벌인 것도 처음 알았다.

여왕은 영연방 국가 원수들의 탄원을 받아들여, 남아공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에 찬성한다.

하지만 대처는 아프리카의 여왕이냐 라면서 비웃고 남아공 백인정권의 편에 선다.

 

드라마가 묘사하는 대처는 단순한 신자유주의 화신이 아니다.

열등한 것은 죽고, 우수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기본 생각.

지지난 세기의 우성학이 튀어나온다.

쌍둥이의 어머니였던 대처는, 잘난 아들의 실수에는 관대하고, 연악한 딸의 호소는 묵살한다.

엄마에게 왜 차별하냐고 눈물로 호소하는 딸에게 대처는 말한다.

'넌 약하니까.'


남아공의 흑인차별도 대처는 기본적으로 같은 접근이었다.

열등한 것은 당해도 싸다. 구원은 스스로 기어올라와라.

대처는 노동자들에게도, 실업자들에게도 같은 메세지를 날린다.

 

하지만 이 불쾌한 거만한 정치인은 11년이나 총리로 있었다.

영국인들은 왜 이 사람을 지지했을까?

이 사람으로 무엇을 하려했을까?

 

포틀랜드 전쟁도 문제다.

전쟁의 발발은 외교적인 해결이 가능했으나,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있던 대처가 공세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기위해 전쟁을 솔루션으로 삼았다. 
물론 남의 땅에 들어가 진을 치고 시비를 건 아르헨티나의 어리석음이 먼저다. 
하지만 대처의 전쟁 솔루선은 많은 사람을 죽이고,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했다. 

전승행진 행사가 열릴 때, 군대와 군중의 환호소리 앞에 선 건, 여왕이 아니라 대처였다. 
드라마를 보면 여왕은 티브이로 행사를 본다. 

질리언 앤더슨의 대처 연기는 재미있었다.
목소리를 너무 과장한 것이 아닌가싶은데, 영미권 시청자들은 꽤 비슷하다고 본 것 같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들 사이에서 경직된 자세로 거만한 목소리를 내며 의견을 관철시키는 모습은 흥미로웠다. 현대의 영웅담이다.

대처도 사람이니 희로애락이 있었겠지만, 마지막 동료의원들로부터 탄핵당했을 때, 침대 위에서 흐느끼는 장면은 좀 너무 감상적으로 간 것 같다. 


대처는 11년이나 총리를 했고, 공과 과가 함께 많은 정치인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뒤로 갈수록, 대처가 등장하면 짜증이 치솟았다.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할 깜냥이 안되니 포기하더라도, 그의 정치방식, 토론방식이 큰 스트레스였다. 그는 갈등을 증폭시켜 자신의 정치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지막 그의 20년지기 부총리가 정계은퇴 연설에서 신랄하게 대처의 독선을 비난할 때, 통쾌했다.

영국정부가 60억을 들여 그의 장례식을 치를 때, 켄 로치는 '대처의 장례식도 민영화하자. 그도 그것을 바랄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는데, 당시엔 뭐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좀 심한 말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깊게 공감한다. 저런 정치인을 4, 5년 보는 건 참을 수 있지만, 11년은 너무 길었다. 


3 다이애나 스펜서
이 여자는 파리의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차에는 무슬림 부호가 같이 타고 있었다.
너무 극적인 죽음이기에, 음모론이 있다.

 

운전사가 영국정보부 사람이다.
사고 당시 다이애나는 살아있었는데, 구급차가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하다 사망했다.
사고현장에 최초로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아니다.
등등.

결국은 모두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를 죽였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발표되고 영국 정부와 왕실관계자들은 드라마가 너무 다이애나에게 우호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다이애나비에게 짜증이 났다.

오히려 그간 가지고 있던 다이애나비에 대한 호감이 싹 사라졌다.

드라마 속 다이애나는 호주 순방에 갓난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떼를 쓰고, 아이를 봐야한다면서 일정을 맘대로 바꿔 스탭들을 패닉으로 몰고, 호주의 유명관광지를 엉뚱한 발음으로 부르고, 피곤하다면서 일정을 중간에 취소하는 등. 그녀는 자신의 공적인 일에 충실하지 않았으나, 그러면서도 놀라운 미디어감각으로 자신이 빛나는 순간만 잘 연출했다. 

가까이 있었으면 역겨웠을 것 같다.
남편 찰스의 스트레스에 동감한다.
그리고 이런 묘사들이 있는데, 어떻게 다이애나비에게 우호적이라 할 수 있을까?

가정을 해보면, 되게 무서운 이야기가 된다.

현실은 드라마의 역겨운 모습보다 더 역겨웠다는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다이애나는 위태롭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다.
일정 부분 찰스에게 원인이 있으나, 다이애나도 열심히 문제를 만든다. 
왕위계승권 1위의 부부가 벌이는 일들을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지고. 한숨이 나온다. 
영국왕실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끝나는 편이 좋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드라마 속 가장 놀라운 장면은 10화에서 있었다.
필립공과 다이애나비의 대화장면.
여러모로 놀라운 대화이고, 이건 논란이 되겠다 싶었다.
드라마 속에서 인물의 죽음을 예고, 혹은 예상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4 마거릿 공주
드라마 내내 담배를 피우던 마거릿 공주는 시즌4에서 자주 기침하고, 병원신세를 진다. 
저 분은 70세에 심장마비로 죽는다.
나는 폐암으로 죽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15세부터 피웠다는 담배에 대한 이미지가 남아있어서 오해했던 것 같다.

시즌4에서 마거릿은 에피소드 내내 완전 조연으로 물러나있다.
가끔 등장해 대처에게 지적질하고, 여왕의 가족사진에 들러리한다.
들러리. 마거릿 공주에게 남은 유일한 공식 직함처럼 느껴진다.

여왕의 아들들이 성년이 되면서, 마거릿 공주는 왕실을 대표해서 행사에 나가는 순위에서 밀려난다. 이 행정처리를 동생에게 통보하는 여왕의 모습은 애틋했다. 그리고 마거릿이 간곡하게 여왕에게 이건 내가 가진 모든 거라며 유지시켜달라고 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 

헬레나 본헴 카터는 왕실의 핵심에서 주변으로 물러나는 마거릿 공주의 혼란, 상실감, 여전한 장난꾸러기 기질을 다 표현한다.

해안가에서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이 특히 오래 기억난다.
드라마에서 두 사람은 격렬한 말다툼을 벌인다.
해변으로 몰려드는 파도와 바람이 두 사람을 덮친다.

실제론 2002년에 마거릿 공주가 심장마비로 죽자,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도 몇개월 후에 딸을 따라가듯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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