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밤에는 19금 영화들이 주로 방영된다.
야한 것들 말고도 단골로 나오는 장르가 갱스터, 호러, 액션 영화들이다.
워렌 비티가 주연한 '벅시'를 며칠 전 밤에 TV에서 보았다.
예전에 봤던 영화여서 중간에 잠깐만 보려고 했는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오래된 영화에서 새로 발견하는 것이 있을 때는 흥미롭다.
마치 처음 보는 영화처럼, 예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부분이 들어있었다.
그 장면은 벅시가 서부의 고속도로 위에서 도박 도시를 만들겠다는 영감을 얻는 장면이었다.
그는 대화의 아사리판에서 우연히 사막에 남겨지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새 사업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사실 이건 이 영화의 핵심 같은 장면이다.
영화 자체가 한 명의 갱스터를 꿈을 가진 사업가로 조명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막에 도박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친구에게 이야기하면서, 벅시가 하는 말이 재미있었다.
후버댐이 곧 완공돼.
그럼 우린 엄청난 전기를 쓸 수 있지.
에어컨을 24시간 돌릴 수도 있고, 물도 마음껏 쓸 수 있어.
벅시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기술적 변곡점, 인프라의 변화를 예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사막에 도박 도시를 만든다는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사실 후버댐의 완공이란 큰 인프라사업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전기를 마음대로 사용하게 되는 시대는 그 전과 완전히 다르다.
에어컨과 냉장고. 24시간 가동되는 전등.
그런 것이 휴양지를 사막에 건설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 벅시가 라스베가스를 떠올린 해는 1945년.
전 세계가 들썩거리던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승전국이었다.
우상향하는 경제 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었다.
새삼 뭐든지 기본, 인프라가 굉장히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기술적 변곡점을 알아채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기회를 갖는다는 것도 알겠다.
벅시는 자신의 잘 아는 어둠의 세계, 도박과 마약을 양지로 끌어내 휴양도시로 확장했을 뿐이다.
★ 후버댐
내가 직접 본 가장 큰 댐은 소양강 댐이다.
후버댐은 소양감댐보다 10배 크다고 한다.
정말 엄청난 규모이다.
트랜스포머에도 비밀기지가 있는 거로 나오는데, 그럴만한 위용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토목공사 중 하나로 평가받는 댐이다.
이 댐은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공법을 썼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프로젝트를 단 5년 만에 해결했다.
총 2만 천명 정도의 인부들이 일했고,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112명이란 주장이 많이 퍼져있으나, 후버댐 공식 홈피에서는 이 설이 잘못 되었다고 교정해준다.
공식 홈피 기준은 96명이다.
112명은 후버댐 건설 시작 전, 지류 강의 기초작업을 할 때 사망한 사람들 숫자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한다.
그 지류 공사 중 사고는 후버댐 건설을 시작하기 8년 전의 일이라고.
후버댐 홈피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을 밝혔는데, 그중 놀라운 게 있었다.
사람들은 후버댐을 건설하다 몇 명이 죽었는가를 궁금해한다.
이건 그럴 수 있다.
그 다음 질문이 있다.
후버댐에 그 중 몇 명의 시체가 묻혀있냐고 많이들 물어본다고 한다.
아마 20세기 토목공사 역사상 가장 많은 시멘트를 부은 공사이기 때문에, 콘크리트 안에 인부가 갇히고 뭐, 그런 걸 상상하는 것 같다.
공식 홈피는 말해준다.
사실 공사 중 사망자는 몇명인지 기준에 따라 불확실하지만, 몇 명이 이 댐에 묻혀있는가는 확실히 답할 수 있다고.
0명이다.
공사에 참여한 인부는 2만 1천여명.
공사 때문에 새로 생긴 마을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다음은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의 이전 거주지를 통계낸 것이다.
정말 미국 전역에서 이 공사를 위해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이동했다.
★ 지금 우리 시대에 후버댐은 무엇일까?
무엇이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크게 우리 삶의 환경을 바꾸고 있을까?
★ 꿈과 현실의 차이, 그리고 이기는 자
벅시는 살해당한다.
지금도 공식적으론 미제사건이다.
애인 버지니아 힐의 집에 있는 그를 총으로 쏴 죽였다.
M1 카빈 소총이었다고 한다.
나도 이 총을 쏴본 적 있다.
굉장히 무겁고 큰 총이다. 격발하면 엄청 반동이 심하다.
나쁜 짓을 많이 한 벅시였기에 그를 죽일만한 용의자가 너무 많았다.
영화는 애매모호하게 가지않고, 분명하게 범인을 지목한다.
돈이 문제였다.
여러 범죄 조직에서 벅시에게 빌려준 공사대금 중 이백만불이 횡령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벅시의 애인 버지니아 힐의 스위스 계좌에 돈이 흘러들어갔다.
영화는 이것을 버지니아 힐, 단독 범행으로 그린다.
벅시도 속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쎄... 벅시가 과연 돈 문제에 클린할까?
두 사람이 함께 횡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벅시는 도박도시의 성공을 확신했고, 나중에 엄청나게 벌면 모두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영화 내내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를 보는데, 보니 앤 클라이드가 생각났다.
워렌 비티는 참 저런 범죄영화에 잘 어울린다.
아네트 베닝도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준다.
갱스터 애인 앞에서 주눅 들지않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제 멋대로인 멋쟁이 여자를 연기했다.
이 두 남녀는 서로에게 위험해서 끌리는 것처럼 보인다.
극단적인 성격의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하면서도 이용해먹고, 독점욕에 너무 큰 희생을 치른다.
사실 실생황에서의 두 배우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만나 결혼했다.
1992년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아이들이 4명.
★ 사막에서 태양을 보며 도박도시를 상상하는 벅시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라스베가스란 도시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잘 어울렸다.
한편, 이것도 이번에 다시 보면서 알게된 것인데, 배우 캐스팅이 절묘했다.
벅시는 해리라는 오랜 친구를 죽인다.
실제 인생에서도 이 사람을 죽인 혐의로 기소까지 된다.
해리는 누구보다 벅시와 가깝고, 유능한 갱이었으나, 상황에 쫒겨 경찰에 협조한다.
벅시는 배신자 해리를 처단한다.
이 해리를 연기하는 배우가 엘리엇 굴드였다.
엘리엣 굴드의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는 오션스 시리즈에서 노련한 사기꾼 선배로 나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티븐 소더버그는 이 영화에서 엘리엇 굴드가 한 연기를 보고, 캐스팅했는 지도 모르겠다.
★ 한편 영화에서 몽상가로 나오는 벅시는 죽는다.
영악해보였던 버지니아 힐도 완성된 호텔에서 추방당한다.
그녀는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호텔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곧 달러를 금광처럼 캘 호텔 등 카지노의 경영권은 누가 가졌나?
누가 이 도박도시의 금을 얻었나?
바로 벅시의 동료갱, 마이어 란스키이다. 그의 별명은 마피아의 회계사.영화에선 벤 킹슬리가 연기한다.
★ 벅시가 죽던 시간, 일군의 남자들이 호텔에 들이닥쳐 버지니아 힐에게서 경영권을 박탈한다.
그들은 마이어 란스키의 부하들이었다.
마피아의 회계사라 불린 란스키도 그 자신이 영화를 만들 법한 극적인 인생을 살았다.
영화 벅시의 끝에서 그는 승자지만, 그도 곧 격렬한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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