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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Drama

알렉스 가랜드의 데브스(Devs) l 하진, 미드 사상 최고로 멋진 한국인 캐릭터ㅣ소노야 미즈노의 릴리는 아담의 첫번째 부인

by 헤로도토스의 별 2021. 1. 28.

★ 미국영화나 드라마에 한국인 캐릭터들이 부쩍 많아진다.

반갑고 기분좋은 일이다.

오랫동안 미드 속 한국인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슈퍼마켓, 코리안타운, 갱단 아지트, 세탁소 였다.

한글 간판은 도시의 불길한 기운을 암시하는 장치로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이번 미드 <데브스>에서 한국인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온다.

내가 본 것 중 최고로 멋진 한국인 캐릭터였다.

 

제이미 역의 하진

★ 제이미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IT 보안회사로, 그는 수비를 담당하는 해커이다.

자신을 찬 여자를 잊지못하는 순정파이고, 

그녀가 위험에 처하자 기꺼이 도움을 준다.

목숨을 걸고 싸우되, 여자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은 아낀다.

 

극중 한국어를 하는 장면은 딱 한번 나오는 것 같다.

그 전까지 웬지 한국인 느낌이 있어서 긴가민가하던 차에, 한국말을 해서 반가웠다.

위험한 일을 앞두고 가족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으로, 아버지와 대화한다.

이때도 멋있다.

거짓말로 가족을 안심시킨다.

정부 관련일을 하게 되었는데, 보안 문제가 생겨서 프로토콜에 따라 가족을 이동시키는 것 뿐이라고.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자신은 정부와 회사의 보호 아래, 안전한 곳에 있다고.

다만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어디로 일주일만 가있으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바로 납득하지 못하자,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제발...

 

이제는 미국 사람들도 한국말이 튀어나오면 그게 한국말인 지 알까?

중국어, 일본어와 구분이 될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켄튼에게 고문당할 때다.

켄튼의 대사는 정말 흥미로웠다.

이 전직 CIA는 무시무시한 철학을 내세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느낌의 대사였다.

 

중국에서 일할 때,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부정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졌을 때, 

상관이 말했어.

이제 중국 정부는 끝났다. 철수해!

다들 소련이 무너질 때처럼, 이제 중국 공산당은 무너질 거라고 했어.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광장으로 탱크를 보냈지.

그리고 항의하는 청년들을 죽였어.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지?

중국공산당은 살아남았고, 중국은 강대국이 되어서 우리와 싸우고 있지.

중국 공산당은 포인트를 잡고 콘트롤할 줄 알아.

중요한 건 콘트롤이야. 

 

이 협박 이후 켄튼은 제이미의 손가락을 부러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미는 릴리를 돕는다.

정말 멋지고 강한 남자 캐릭터이다.

그리고 그런 강골, 반골, 기개가 한국인에게 있는 것처럼 그려져서 좋았다.

또, 중국 현대사에 대한 저런 대사가 있는 걸 보면,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 대한 감독의 인정도 있는 것 같다.

제이미는 한국인이고, 그는 독재 권력의 콘트롤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치 제이미가 켄튼의 협박을 받은 뒤, 이런 말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네 말이 맞아. 중국 공산당은 조정에 성공했지.

하지만 난 한국인이야.

 

하진은 강한 내면을 가지고 섬세하고 유머러스한 청년을 잘 연기했다.

 

제이미와 릴리

★ 소노야 미즈노가 연기한 배역의 이름은 릴리 챈이다.

홍콩에 가족을 두고, 혼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나온다.

극중에서 이 캐릭터를 놓고 이렇게 평하는 대사가 나온다.

 

굉장히 영리한 사람이야.

그리고 독특하지.

마치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처럼 보여.

 

소노야 미즈노는 두상이 굉장히 이쁜 배우다.

무용을 했다고 들었는데, 몸선이 딱 무용수이다.

동글동글 이쁜 두상이 영리한 인상을 만든다.

 

극중 릴리는 자유의지 문제를 상징한다.

종교와 과학이 달려와 충돌하는 이 드라마에서, 릴리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녀는 결국 자유의지의 상징이 된다.

그런데 왜 이름을 릴리라고 지었을까?

 

소노야 미즈노, 릴리 챈역.

 

 아마도 '릴리트'에서 따온 것 같다.

유대교 문헌인 카발라 전통에서 릴리트 란 존재가 있다.

아담의 첫번째 부인으로, 나중에 도망쳐서 악마가 된다.

첫번째 부인? 이브는 어쩌고?

여기에 되게 흥미로운 설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사전에서 릴리트를 잘 요약해놓은 것이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릴리트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카발라의 중요 문헌인 '조하르' 즉 '빛의 책'에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릴리트는 아담과 동시에 태어난 최초의 여자이다. 

아담과 마찬가지로 진흙과 하느님의 숨결에서 나왔으므로 아담과 대등하다.

 

 릴리트는 아직 의식이 없었던 '아담의 정신을 낳은 여자'로 묘사된다. 릴리트는 선악과를 먹고도 죽지 않는 것을 보고 욕망이 좋은 것임을 깨닫는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는 여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녀는 성행 위를 하다가 아담과 다툰다. 자기가 아래에 있는 것이 싫어서 체위를 바꾸자고 요구한 것이 싸움의 빌미가 되었다. 아담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다툼의 와중에서 릴리트는 신의 이름을 부르는 죄를 범하고 낙원에서 도망친다. 신은 그녀를 뒤쫓도록 천사 세 명을 보낸다. 천사들은 그녀가 낙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녀의 자식들을 모두 죽일 거라고 위협 한다. 릴리트는 위협에 굴하지 않고 동굴에서 혼자 사는 길을 선택한다. 최초의 페미니스트인 릴리트는 인어들을 낳는다. 이 인어들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들을 본 남자들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 버린다.

 기독교인들은 이 전설을 변형시켜, '아니라고 말한 여자' 릴리트를 마녀, 검은 달의 여왕(히브리어로 레일라는 '밤'이란 뜻), 또는 악마 사마엘의 반려자로 만든다.

 중세의 몇몇 가톨릭교회 판화에는 그녀가 이마에 질(陸)이 있는 모습(이마에 남근을 상징하는 뿔이 달려 있는 일각수에 대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릴리트는 이브(아담의 몸에서 나왔기에 더 순종적인 여자)의 적으로 간주된다. 릴리트는 모성을 지닌 여자가 아니다. 릴리트는 쾌락 그 자체를 좋아하며 자녀의 상실과 고독으로 자유의 대가를 치른다.

 

릴리트는 아주 오랫동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그러다 70년대 폐미니즘의 선구자들이 릴리트의 독립적인 모습을 재평가했다.

 

릴리트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발음으로 불린다.여러 이름이 있지만, 그 강렬한 존재에서 뿜어나오는 생각들이 힘이 세다.

 

 

★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자유의지, 신과 대결하는 여성 캐릭터를 설정하자마자 릴리트를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영리한 작명이다.

다만, 이런 식의 작명은 캐릭터의 결말을 예고하는 기능도 한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야!

하는 급은 안되어도, 결말을 알려준다.

릴리가 릴리트에서 왔다는 사실만 알아도, 드라마의 마지막에 저 여자가 무슨 짓을 할 지는 예측이 되는 것이다.

 

★ 만듬새가 매끈한 1급 드라마. 

무엇보다 진지한 질문을 진지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면이 좋다.

 

이 드라마를 보니, 결정론, 양자역학, 실리콘밸리, 자유의지

이런 단어들에 대해 가만히 앉아 오래 생각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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